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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험가 콜럼버스가 알려주는 바다의 역사와 해양탐사
    신기한 과학 2024. 1. 22. 03:11

    이탈리아의 탐험가이자 항해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어떻게 해양탐사를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바다의 역사부터 알아봅시다.

     

     

     

     

    바다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45억 년 전, 태양계의 한 곳에 지구의 땅덩이에는 아직 생명체의 기운이 움트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런 땅덩이를 수증기와 이산화탄소가 두텁게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지구는 지름 10여 킬로미터 내외의 소행성과 잦은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지축이 흔들리는 소음이 연일 끊이지 않았고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 에너지는 지구의 온도를 높여주었습니다. 지표는 열을 외부로 방출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구 대기를 휘감고 있는 수증기와 이산화탄소가 그것을 막았습니다. 이른바, 온실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니 지구의 온도가 낮아지기는커녕 더욱 올라갔습니다. 지표의 온도가 1천500도 내외가 되자 암석이 녹기 시작했습니다. 지표는 펄펄 끓는 '마그마의 바다'로 변했습니다.

     

    뒤이어 두텁게 상공을 에워싼 공기층이 태양 광선의 출입을 억제한 것입니다.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광이 줄고 지표의 마그마가 굳자, 건조하던 대기가 습해지면서 구름이 형성되었습니다. 수증기를 머금으며 부피를 키워 가던 구름은 이내 무거워진 자체 중량을 이기지 못하고 지상으로 비를 뿌렸습니다. 폭포처럼 끝없이 쏟아지는 역동적인 비였습니다. 빗방울은 빠른 속도로 지표를 식혀 나갔고, 낮아진 지구의 온도는 더 높은 곳에 떠 있는 구름을 끌어내리며 더 많은 비를 불렀습니다. 언제 그칠지 모르게 거세게 떨어진 빗방울은 그렇게 대지의 일부를 적시며 차츰 바다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쉽지 않았던 해양 탐사

    바다의 탄생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으로부터 수백만 년 전, 드디어 인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였습니다. 인간에게 바다는 항해해 보고 픈 간절한 바람의  대상이었습니다. 항해의 바람과 하늘을 날아 보고자 하는 바람 중, 어느 것이 더 오래된 꿈인지 가리기 어려울 만큼 바다 탐험에 대한 인간의 바람은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최초 선조들에게 바다는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곳이었습니다. 바다를 향한 욕망의 표현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바람이 일으키는 파도나 감상하고, 갯벌에서 조개나 줍는 수준이었습니다.

     

    인간은 손수 뗏목을 만들거나, 자그마한 어선을 타고 조심스레 바다를 경험하게 되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해안가 근처를 벗어나지 못하는 바다 탐사였습니다. 바다는 그만큼 인간의 접근을 쉬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자그마한 고깃배 수준을 넘는 어선을 제작해서 해안을 벗어나는 탐사를 시작한 건 3천여 년 전의 일입니다. 본격적인 해양 탐사의 시작은 기원전 1천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3천 년이란 세월은 인간의 수명과 비교하면 결코 짧은 시간이라고 볼 수 없지만 그렇더라도 인간이 지구에 태어난 수백만 년이란 시간과 비교하면 하룻밤 정도에 지나지 않는 기간일 따름입니다.

     

    바다를 최초로 탐험한 사람들은 지중해 주변에서 삶을 누리던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들이었습니다. 이 당시의 해양 탐험은 연근해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연해(연안)는 배를 타고 나갔다가 육지로 다시 들어오는 데 하루 정도 걸리는 거리까지의 바다를 가리킵니다. 반면에 원양은 바다로 나간 배가 어업을 끝내고 육지로 되돌아오기까지 수개월 가량 걸리는 바다를 뜻합니다. 그리고 그 중간쯤의 시간이 걸리는 바다가 근해입니다. 통상 연해와 근해를 합쳐서 연근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항해는 그날 아침 일찍 나가서 그날 저녁에 다시 돌아오는 항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본격적인 해양탐사의 시작

    그리스인과 페니키아인들이 바다로 나간 주된 목적은 바다 자체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고기를 잡고, 물품을 이송해 주는 등 순수하게 상업적인 활동을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의미 있는 첫걸음이었습니다. 뒤이어 로마인들이 바다를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수심을 측정하고, 해수의 염분과 퇴적과 침식을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바다로의 진출은 연근해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정된 탐험일 뿐이었는데, 여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그린 바다는 수평선 너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수평선 너무에는 끝없는 낭떠러지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건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적도 남쪽에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녹아 버린 흉측한 몰골의 존재들이 그곳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이런 두려움들이 먼 뱃길을 막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이 아닌 이상, 인간의 뱃길이 언제까지나 연근해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15~17세기에 이르러 한층 성숙된 지식을 이용해 새로운 바닷길을 개척해 나가면서, 마침내 연근해를 벗어나는 해양탐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연근해를 벗어나 새로운 바닷길을 개척하는 것은 태평양으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태평양은 바다의 제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넓이가 지구 전체의 육지 면적보다 넓고, 바다 중에서 가장 크며, 수심도 가장 깊습니다.

     

    이 무렵 유럽의 강대국들은 커져 가는 국력을 앞세워 거세게 불어 닥친 식민지 쟁탈에 열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태평양 너머로까지 뱃머리를 돌리게 되었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한 것과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사상 최초로 세계 일주를 완수해 낸 것이 다 이 당시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해양탐사는 이후 과학적 해양탐사를 위한 탄탄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전 세계의 바다 곳곳을 두루 누비며 연구하는 실제적인 의미의 과학적 해양탐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의 예로 1872년 12월 7일 영국을 출발한 선박이 북대서양, 남극해, 마리아나 군도의 남쪽 해역을 조사하고, 바다 깊이를 재는 탐사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환했습니다. 그 짧지 않은 탐사 여행동안 490여 회의 심해 측심과 260여 회의 수온 측정 및 해수채취 그리고 130여 회에 달하는 해저 퇴적물 채집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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